촛불의 시대,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책과이야기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고병권

6월 25일부터 지난 주말인 7월 5일까지 10일동안 시청 앞 촛불 집회에 5번 참석했습니다. 지금 따져보니 꽤 많이 다녀왔네요. 그 짧은 기간에 별별일을 보고 겪었네요. 아마도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일거에요.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6월 28일 직격은 아니지만 여러 차례 물대포를 맞고, 다음 날 팔 쪽에 두드러기가 생겨서 한 동안 고생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경찰이 물대포에 최류액을 섞었다더군요. 병원가서 진단서라도 끊겠다고 더운 날씨에 피부과 찾아 방황도 했는데 회사가 시골 동네에 있어서 피부과가 없더군요. 하지만 그 보다도 저를 더 경악하게 만들었던 건 28일 밤 11시 이후 있었던 폭력 진압입니다. 저는 10시 50분이 좀 넘어서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알고보니 제가 있던 파이낸스 빌딩 바로 앞에서부터 폭력 진압이 시작되었더군요. 아마도 10분만 더 있었으면 지난 주 저는 경찰의 방패에 찍히거나 경찰에게 밟혀서 어디 병원에 입원해 있었을겁니다.

그 외에도 6월 30일날 있었던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에서의 감동도 잊을 수 없겠죠. 솔직히 그 전 토요일 물대포에 맞고 폭력 진압이 있었던 상황에서, 일요일에는 정부에서 강경 대응을 하겠다는 선전포고까지 나왔기 때문에 겁도 많이 났고, 지금 생각하면 웃기기도 하지만 그 때는 정말 맞아 죽을 각오까지 하고 퇴근하자마자 시청으로 달려갔던 날이였어요. 시청에 도착했을 때도 6시에 예정된 미사는 경찰이 음향차를 탈취했다고 시작도 못 하고 있지, 시청역 출구 쪽에서는 강제 연행된 사람들 때문에 시끄럽지... 그런 분위기를 단번에 반전 시켜주신 만렙 사제님. 이 날은 메타스쿨의 고아라 분들과도 처음 만난 날이였습니다. '신부님 힐링 주세요'라는 피켓을 들고 있었는데, 저는 정말 무한 힐링을 받은 느낌이에요. ^^

출판사 그린비에서 얼마 전 '촛불의 시대,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라는 포스트가 올라왔습니다.
'책'은 어떤 사태를 깊게 분석하고, 긴 호흡으로 사유하게끔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느린 미디어입니다. 하지만 동시에그것은 '행동'의 동력을 제공합니다. 짧게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보다, 숙고한 후에 움직일 때 더 오래 움직일 수 있다고확신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태가 끝난 후 '책'을 읽으면서 그 경험을 각자의 신체에 각인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전의 체험을 다시생각하면서 앞으로의 전망을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관심없던 저로서는 앞뒤 상황을 이어보고 좀 더 객관적인 인식을 필요로 하고 있었기에 반가운 글이였습니다. 여러 책 중 제가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합니다. 동네 도서관에 비치된 책이 저거 밖에 없었거든요..;

그래서 6월 28일 시청으로 향하던 지하철에서 책의 첫 페이지를 펼쳤고, 예상보다 더 빨리 제가 그 곳으로 향하는 이유를 알아버리고 말았습니다.

대의되지 않은 채, 표상되지 않은 채 남은 대중들, 대표들에 의해 더 이상 그 뜻이 표현되지 않은 대중들은 이론상으로는 실존하지도 않아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정치인들이 대의하지 않고 언론이 보도하지 않을 때, 그들은 분명히 정치적으로 실존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실존할 수 없다는 건 체제 내에서 뿐이다. 정치적 실존 영역 바깥에서, 즉 체제 바깥에서 그들다수가 존재하기 시작하고 있다. 지금 한국 사회의 많은 대중들이 부나 권력 영역에서 체제 바깥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런 상황이지속되면, 대표자들은 결국에 가장 무서운 대중들, 즉 '어떻게 해도 이해할 수 없는 대중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p.9

대의민주주의라는 우리나라에서 저는 더 이상 실존하지 않는 대중이길 거부하기 위해, '어떻게 해도 이해할 수 없는 대중들'의 한 사람으로 그 곳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소고기 수입 반대, 공기업 민영화 반대, 대운화 반대 등등의 자잘한 것들보다는 근본적인 이유가 저것이 아니였나 싶네요.

천부인권. 하늘이 그 권리를 내리셨다고들 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하늘이 내리신 것은 권리가 아니라, 권리를 위해 투쟁할의지와 능력인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인간은 인간이기 위해서 투쟁해야 하며,인간을 인간으로 대접하지 않는 사회 너머에는 법적 이데올로기적 시비를 넘어서는 투쟁이 존재한다는. -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p.90

천부인권. 내 권리를 지키는 방법은 나가서 내 목소리를 내고, 이렇게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간의 삶의 경험으로도 내 밥 그릇은 내가 챙겨야 한다와 일맥상통(?) 하지요. ㅋㅋ

사실은 신부님들의 반전이 있기 전까지 사회 문제에 관심도 없고 운동권 경험도 없는 저로서는 더 이상 비폭력 시위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회의적인 편이였습니다. 그래서 '비폭력 무저항'의 촛불 시위가 '비폭력 저항'으로 바뀌었을 때도 당연한 결과라고만 생각했었죠. 끝까지 '비폭력 무저항'을 외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도 여기 있었네요.

낡은 혁명을 바라고 선동하는 것은 오히려 지배권력 쪽이다. 엥겔스는 그들의 도발에 넘어가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한다."독자들은 이제, 왜 지배권력이 단연코 우리를 총이 발사되고 사벨 군도가 휘둘러지는 곳으로 데리고 가려 하는지 이해하는가? 왜사람들은 우리가 애초에 패배를 알고 있는 거리로 지체 없이 가지 않는다고 오늘날 우리에게 비겁함의 낙인을 찍는가?" 낡은 무기를집어 들고 낡은 봉기를 일으키는 것은 더 이상 영웅적이지 않다. 그것은 힘이나 용기가 아닌, 어리석음만을 보여줄 뿐이다. -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p.105

'폭력 시위' 내지는 언제든 폭력이란 오명을 뒤집어 씌울 수 있는 '비폭력 저항' 시위는 저들이 원하는 것이였습니다. 그렇다고 폭력을 선동하기 위해 먼저 폭력 진압을 시도하는 저들에게 대항하는 방법이 그냥 때리는 대로 맞자여야 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지난 한 주동안 만났던 고아라 사람들의 대안 시위(노래하기, 엽서쓰기, 놀기 등)는 좋은 방법이라는데는 동의하고 있습니다.

재밌게도 이 책은 2007년 초에 발간된 책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 말기였어요. 책의 일정 부분은 그 당시 정권에 대한 비판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사회에는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지금만큼 그 지저분한 문제들이 표면에 적날하게 들어난 적이 있었을까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 대변해주겠죠.

어짜피 하루 이틀 하다가 끝날 싸움은 아닐 겁니다.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던 문제들을 하나씩 꺼내 해결하려면 짧은 시간만으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제 시위에 나가는 횟수는 좀 줄이려고 합니다. 정치라는게 내 생활에 얼마나 밀접한 지 알게 되었으니, 이제 저도 생활에서 하나씩 실천(불매운동 등)하면서 대응할 생각이에요.

그리고 계속해서 공부하고 알아가야겠죠. 일단은 그린비에서 올려주신 다른 책들부터 읽는걸로 시작 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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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그린비 정군 2008/07/11 15:08 # 삭제 답글

    부족한 글에 트랙백까지 날려주시고, 무려 책까지 읽어주시다니, 감동해서 어쩔줄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나누고, 함께 느끼고 싶은 것들을 중심으로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
  • 지아 2008/07/11 15:13 #

    첫 댓글을 그린비에서 달아주실 건 예상하지 못 했는데..
    항상 좋은 글, 좋은 책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기대할께요.. ^^
  • 맹꽁 2008/07/11 17:15 # 삭제 답글

    맨 앞줄의 사람들이 항상 논란의 소지를 만들더군요. 일부는 1인미디어로서의 사명감 때문에 앞으로 나갔을 것이고, 일부는 단지 성질을 못 이겨서 뛰쳐나갔던 거겠지만, 진압 부대와 가까이 붙어 있는 것 자체가 다이너마이트 앞에서 담뱃불을 당기는 행위와 마찬가지 역할을 했습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제가 선호했던 방식은, 시대의 저편에 눌러앉아 있는 이명박 패거리들을 약 올리고 가차 없이 비웃어주는 시위 방식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서울시 전체를 둘러싸는 무한 촛불 띠 잇기 같은 것(일렬로) 말이죠. 아니면 홍길동처럼 서울 전역에서 예고 없이 펼치는 플래시몹 같은 것도 있고요. 그런 게 우리 세대(?라고 하기엔 스펙트럼이 좀 넓지만)에 더 잘 어울리는 저항의 방식이라고 믿습니다.

    다시 요약하면, 방패와 곤봉과 물대포로 상징되는 저들 집단은 우리와 수준 차이가 너무 나니까 아예 상대해주지 말고 차라리 다른 시민들을 향해 눈길을 돌리고 그들과 함께 어우러지자는 얘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지아 2008/07/12 11:13 #

    서울시 전체를 촛불 띠로 잇는 건 생각만해도 장관이겠네요..
    그 정도 인원이 모여줘야 하고 경찰의 방해가 없어야 겠지만요. ^^
    플레시몹은 이미 소드에서 했었는걸요..

    마지막 단락을 읽다보니 전에 촛불 문화제 끝낸 사람들이 진압을 위해 대기하고 있던 경찰에게 잘 있어라 손 흔들고 다같이 여의도로 행진했던게 생각나네요.

    대다수의 사람들이 저처럼 시위 경험이 적거나 전무한 사람들이겠지만, 계속해서 배워가고 기가막힌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있으니 저는 앞으로 사람들의 방향이 기대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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