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초월한 연암 박지원 책과이야기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고미숙 지음 / 그린비
나의 점수 : ★★★★






연암 박지원. 그 이름 외에는 저에게는 이 책을 읽기 전 박지원에 대한 사전 정보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건 그냥 요즘 그린비 출판사의 책들이 자꾸 끌려서랄까... 아직 호불호를 가릴만큼 여러 책을 읽어본 건 아니지만, 세상이 어수선해지면서 내 우물 밖도 내다보게 된 저에게는 지금 시점에서 읽기 적절한 책들이 많은 것 같아서에요.

이 책은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대한 책이라기 보다는,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고미숙님이 본인의 시선 또는 들뢰즈/가타리의 시선에서 바라본 열하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인터넷 서점 서평들을 살펴봤는데, 열하일기에 흥분한 작가가 쓴 책이라는 평도 있었거든요. 제 입장에서 책 전반에 대한 느낌만 이야기하자면 박지원에게 열광하는 작가에게 동화되어 같이 열광한 독자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솔직히 저는 들뢰즈가 뭐하는 사람인지, 가타리는 먹는건지(응?)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한 공순이라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딱히 뭐라고 할 말이 없습니다. 게다가 책 읽는 내내 '리좀'이니 '클리나멘'이니 하는 생전 들어보지도 못 한 단어들이 난무하는데 살짝 거부감이 들기도 했구요.(책 뒤편에 용어에 대한 간략한 해설이 있었지만, 그냥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읽어나간 제 탓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 고미숙님과 마찮가지로 연암 박지원에게 열광하게 되었습니다. ^^

다른 책을 읽어본게 아니니 이 책에 묘사된 박지원이라는 인물에 대한 해석이 무조건 옳다고 봐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180도 다른 사람일리는 없겠죠. 본격적으로 열하일기에 대한 썰을 풀어내기 전 일단 기지개하듯 박지원이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조선 영조때 당시 기득세력이였던 노론 집안에서 태어난 박지원은 철저히 엘리트 코스를 밟고 정계에 화려하게 진출할 수 있는 배경을 가진 사람이였습니다. 실제로 어렸을 때는 과거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열공을 하기도 했었구요.

하지만 젊은 박지원에게 우울증이 생깁니다. 우울증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그가 선택한 건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며 우스개소리를 모아 글로 옮기는 것이였습니다. 사대부가의 앞날이 창창한 청년이, 그것도 근엄한 척, 고고한 척하는 글을 써야만 옳다고 믿는 그 조선시대의 시대적 배경으로 보자면 참 엉뚱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엉뚱하게도 우울증이 세상 모든 일을 해학과 유머로 뚫고가는 연암 박지원을 만들었습니다. 어느 순간 박지원은 권력으로부터 스스로 멀어집니다. 과거 시험에서 백지를 내거나, 그림을 그려 시험지를 제출하기는 기행을 하기도 합니다.

조선시대 르네상스라고 할 수 있던 정조 때 박지원은 걸출한 재야의 선비로 이름을 날립니다. 충효보다는 우정을 더 무겁게 생각하는 당시 시대에서는 주류에서 참 많이 벗어난 학자가 됩니다. 박지원이라는 인물이나 그가 쓴 책들이 그 당시 공공연하게 터부시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시대상에 비추어보면 나름 이해가 가기도 하지요. (이 책을 읽다보면 조선 중후기 사람들이 얼마나 답답한 사람들인지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19세기 후반부터 주목받기 시작한 그의 생각들이 21세기인 지금에 와서도 공감대를 가질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연암 박지원이라는 사람이 시공간을 초월하는 인물이라는 증거는 아닐지... 당시 시대상을 고려하면서 읽게되면 박지원이라는 사람은 자기 시대의 패러다임을 산산히 부수었다고 하긴 좀 그렇지만, 그 틀 밖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지식인이였음은 틀림없습니다. 자기 시대의 패러다임을 깨고 나와서 한 발짝 떨어져 세상을 바라본다는게 그게 일반인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임을 생각하면 존경스럽지 않을 수가 없네요.

열하일기는 박지원이 청나라 사신단 무리에 꼽사리껴서 연경(북경)을 지나 황제의 피서지라는 열하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과정을 적은 6개월 간의 여행기입니다. 하지만 열하일기는 단순한 여행 기록이라기보다는 여행 중 만나는 소재에 대한 자신의 사유의 기록 쪽에 더 가깝지는 않을지... 당시의 조선과 명말한 명나라, 그리고 당시 중원의 주인이었던 청나라에 대한 시대적 큰 그림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함께 이동했던 사신단 일행이나 자신의 하인들의 자잘한 대화들, 여행 내내 발이 되어주었던 말에 대한 이야기까지 아주 사소한 이야기까지 박지원이 얼마나 세상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는지 알게 해줍니다.

책을 읽다보면 인간적인 매력이 물씬 풍겨나는 박지원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더라구요.

책 뒷 편에는 동 시대를 살았던 다산 정약용과 연암 박지원이 시대적 배경 때문에 역사적으로 그냥 똑같이 실학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두 사람이 서로 얼마나 정 반대되는 인물인가에 대한 비교도 있습니다. 출생 신분부터 시작해서 권력에 대응하는 방법이라든지, 학문을 바라보는 시각. 서로 평행선을 달리 듯 모든 면에서 전부 상반되는 인물입니다. 두 사람 다 학문적 성취도에서는 모두 존경할만한 학자지만, 인간적인 면에서는 저는 박지원쪽이 좀 더 끌리네요.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지 않고, 시대의 패러다임에서 한 발 물러날 수 있고,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세상을 유머러스하게 즐길 수 있었던 그런 사람에게 어떻게 열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

핑백

  • 일일신우일신 : 패러다임 뛰어넘기 2008-12-23 20:26:31 #

    ... 이 책은 언제 읽나;;)  얼마 전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읽었는데 연암 박지원은 자신이 살던 시대의 패러다임을 넘어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대를 초월한 연암 박지원'으로 포스팅한 적도 있습니다. 남들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것들도 박지원은 자기 방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어색하지 않을 그런 사유 ... more

덧글

  • 커피냥 2008/08/20 17:29 # 삭제 답글

    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도서관에 갈때부터 보아왔던 도서관 추천 도서 목록에
    열하 일기가 있어서 항상 읽어 봐야지 읽어 봐야지 하면서도 아직까지도 못 읽어봤는데...
    (사실 도전을 해보았으니 학교에 소장되어 있는 책은 아주 오래된 책이라 한문도 많고 빽빽한 글자들 뿐이라 힘들더라구요 ^^;;)

    지아님께서 읽으신 이 책으로 도전해서 꼭 읽어 봐야겠어요 ^^
  • 지아 2008/08/20 17:38 #

    근데 이 책은 열하일기에 대한 독후감 같은 책이라서 추천 도서에 써있는
    그런 열하일기를 기대하시면 아니되어요..

    그치만 열하일기에 도전하기 전에 몸풀기용으로 읽기에는 적절할 것 같아요.
    저도 진짜 열하일기를 읽어봐야하는데 말이죠. ^^
  • 한날 2008/08/25 22:36 # 삭제 답글

    이 책을 읽었으니 “비슷한 것은 가짜다”도 읽어보시게. :)
  • 지아 2008/08/26 00:45 #

    오.. 책 추천은 언제나 ㄱㅅ
  • 2009/03/25 18:13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지아 2009/03/25 19:36 #

    와아 감사합니다.
    메일 보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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