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다든가 음악이나 미술을 감상하다보면 과거의 인물들이 자기 시대의 틀 안에서 생각하고 창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드물게 자기 시대의 틀을 벗어나서 큰 발견이나 발명을 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얼마 전부터 바흐의 음악을 듣고 있는데 대부분의 음악이 종교적 색체가 너무나 두들어지게 나타납니다. 바흐가 살던 시대를 반영하고 있지요. 지구가 둥글다는 걸 발견한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그 당시 시대를 크게 벗어난 발견을 한 사람일거구요. 이렇게 시대의 틀을 벗어나는 발견들이 이어지면서 우리의 생각들도 발전합니다. 그래서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살던 시대의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걸 이해하지 못 했지만, 지금의 우리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그 시대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받아들이는 패러다임이 시간이 흐를수록 바뀌어가는 걸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합니다. (사놓고 몇 년째 읽지 못 하고 있는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이 책은 언제 읽나;;)
얼마 전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읽었는데 연암 박지원은 자신이 살던 시대의 패러다임을 넘어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대를 초월한 연암 박지원'으로 포스팅한 적도 있습니다. 남들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것들도 박지원은 자기 방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어색하지 않을 그런 사유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자기 시대의 틀을 뛰어 넘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시대의 패러다임을 꿰뚫고 세상을 바라 볼 수 있을지도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익숙해져 있는 지금 현재의 패러다임은 나에겐 공기처럼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라 눈에 보이질 않더군요. 누구나 마찮가지겠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살다 간 시대의 공기처럼 익숙한 그 패러다임을 넘어서서 세상을 바라보지 못 합니다. 그런게 있다는 것 자체를 인지하지 못 하고 사라지는 사람들도 많을 것 입니다. 저 역시 마찮가지입니다.
몇 일 전부터 '공산당 선언'을 읽고 있습니다. 공기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저에게 '공산당 선언'은 정말 새로웠습니다. 사실 아직 반도 읽지 못 했고, 뒤로 갈 수록 억지스럽게 들리기까지 한 자본주의에 대한 부정적 설명과 받아들이기 힘들만큼 완전히 다른 차원의 공산주의에 대한 옹호. 그런데 정말 놀라운 건 이 책을 읽을수록,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노력하면서 내가 살고 있는 시대의 패러다임이 어떤건지 아주 조금 보였습니다. 안개 속에 숨어서 절대 눈에 보이지 않을 것 같던 그 틀의 가장자리가 슬쩍 보였단 말이지요.
연암 박지원이 자기 시대를 뛰어넘는 사람일 수 있었던 것이 혹시 이런게 아니였을까 하는 어설픈 생각을 해봤습니다. 저는 적어도 살면서 내 시대의 패러다임을 뛰어 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저 그것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기라도 할 수 있을까요...


덧글
coolen 2008/12/29 13:58 # 삭제 답글
너무 공감이 많이 가는 글입니다. 쿤 아저씨의 많은 번역 중에 저 아줌마가 번역한 것이 그나마 제일 낫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저도 올해야 저 책을 읽었답니다)
지아 2008/12/30 09:57 #
'과학혁명의 구조'를 읽으셨다구요!!아.. 저는 서문에서 헤매다가 이건 한글로 쓰여진 외계어라고 생각하고 포기했는데,
다시 도전해봐야겠네요.. ㅎㅎ
gsong 2009/01/04 17:51 # 삭제 답글
'과학혁명의 구조' 번역본 읽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원서도 문장이 쉽진 않다고 하더라구요.ㅎㅎ아이러니한 건 패러다임의 혁명은 외부에서 오는 게 아니라 내부에서 만들어진다는 데 있는 것 같아요. 쿤은 이걸 패러다임의 위기라고 표현했는데, 패러다임의 한계점들이 많이 드러난 다음에야 혁명이 시작되는 거지요. 만약 천동설로 모든 천체현상이 설명되었다면 지동설도 나오지 않았겠지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몸담고 있는 패러다임을 뛰어넘으려면 거기에 푹빠져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경제학에서도 과학과 비슷한 혁명이 일어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대한민국 모습을 보면 자유주의, 자본주의 등에서 한계를 느끼는 국민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나라가 이런 일에 수정 보완 작업을 꾸준히 해주면 좋을 텐데 그것도 아닌 것 같구요. 아무튼 이래저래 골치 아픈 시국이네요. 이럴 땐 그저 책이나 읽고 조용히 사는 게 짱 ㅋㅋ.
인사가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지아 2009/01/06 10:30 #
'과학혁명의 구조'를 사게 된 계기가 한동안 교양과학 서적에 빠져 지냈는데, 여러 책들에서 '과학혁명의 구조'를 인용해서 였어요. 여전히 서문을 벗어나고 있진 못 하지만 한번 쯤꼭 읽어봐야 할 책인건 분명한 듯 해요. ㅎㅎ뭐... 요즘 시국이야 신경쓰면 쓸 수록 화만나고 그닥 생산적인 반응을 만들어내지도 못 하고 있으니 gsong님 말대로 신경쓰고 책이나 읽으며 살아야겠어요..
저도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용~